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척 노리스 (문단 편집) === 데뷔 === 척 노리스는 무술시범을 하러 여기저기 돌아다녔는데, 이때 [[이소룡]]과 처음 만났다. 그리고 그 둘은 급격하게 친해져서 누구도 끊을 수 없는 절친이 되었다. 친구이던 이소룡의 부탁으로 영화《[[맹룡과강]]》에서 콜로세움에서 마지막 대결 상대로 스크린 데뷔를 했다.[* 이때 척 노리스가 "아하, 자네 세계 챔피언을 이기고 싶은 거구만?"이라고 농담조로 묻자, 이소룡은 "'''아니, 난 세계 챔피언을 죽이고 싶어'''" 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소룡과는 전미 챔피언 시절부터의 친구로 서로 배우고 가르쳐주는 사이였다고 한다. 당시의 척 노리스는 세계 가라데 미들급 챔피언이었다.[* 척 노리스의 한국에서의 복무기간을 고려하면, 그의 무술 수련 기간은 적으면 2년, 최대한 많아야 5년을 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고도 북미와 세계를 휩쓸었으니, 당시 북미 무술계의 수준을 알 만하다는 비판이 있다. 이런 비판은 이소룡 신격화 열풍 때, 진지한 무술가나 연구가들이 이를 어이없어 하면서 한 반박이 척 노리스에게도 불똥이 튄 면이 있다. 평생 무술대회 참가나 공개적인 무술시합을 한 번도 한 적 없는 이소룡에 비해, 척 노리스는 분명 무술대회에 적극적으로 참가해 실력을 입증한 사람이므로, 척 노리스로서는 억울한 면이 좀 있다 하겠다.] 미국 내 태권도 보급에 공헌했으며 미국 태권도계의 대부인 [[이준구(태권도)|이준구]]씨와도 막역한 사이라고 한다.[* 이소룡-이준구-척 노리스 이렇게 셋이서 친했다.] 미국에서 [[세계태권도연맹|WT(세계태권도연맹)]]에서 공인까지 받은 태권도 지도자로서, 자신이 배웠던 무술들을 종합하여 '천국도'라는 무술을 창설하기도 했다. 1980년대 들어 신흥 영화사 '[[캐논]] 그룹'[* Cannon. 이스라엘 자본으로 유태인 제작자이자 감독인 메나헴 골란(실베스터 스탤론 주연의《오버 더 톱》을 감독하기도 했다.)이 운영했다. 여기서 만든 영화들은 당연히도 친 이스라엘 성향에, 아랍 및 미국의 적은 악랄하고 찌질하게 나와서 미국 우월주의 우익 영화사로 비아냥도 많이 당했다.《부르다크》란 제목으로 개봉한《대특명(Missing In Action)》을 비롯한 영화를 보면 베트남은 무조건 악역으로 나온다. 여기서 제작한《플래툰 리더》를 보면 미군은 정의의 군대로 베트남 민중을 지키고 베트콩은 무조건 학살한다는 무슨 홍보영화 수준이다. 그 나름대로 돈 벌어서《[[슈퍼맨]] 4》제작에 투자했다가 홀라당 말아먹은 걸 비롯하여, 중소 영화사답지 않게 블럭버스터에 무모하게 도전한 끝에 결국은 망해 문 닫아버렸고, 이탈리아인 제작자 디노 디 로렌티스 휘하의 DEG 영화사에게 판권을 넘겨버렸다.]과 연대하여 많은 액션 영화를 연이어 히트시켜 전성기를 누리게 된다. 대표작은《매트 헌터》[* 바로 대특명과 [[13일의 금요일: 더 파이널 챕터]], 돌프 룬드그렌이 주연한 레드 스콜피온의 감독인 조셉 지토가 감독한 영화로 원제는 INVASION U.S.A. 1985년작으로 한국에서 매트 한터라는 제목으로 개봉했고 세경에서 매트 헌터라는 제목으로 비디오가 나왔다. 1994년 6월 18일 토요명화 방영 제목은 원제대로 USA 침입자.]《[[델타 포스(동음이의어)|델타 포스]]》[* 2편은 완전히 척 노리스의 독무대인데, 여기서 국내개봉당시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은 [[필리핀]]에서 촬영당시, 헬리콥터가 추락하여 조종사(《리셀 웨폰 1》에서 헬리콥터 액션 연기를 하던 베테랑 조종사가 여기 조종사 역을 맡아서 필리핀으로 왔다가, 개판인 안전 장비를 보고 기겁하고 거부하며 귀국했는데, 그래서 조조 임페리얼이라는 다른 조종사가 맡았다. 그리고 사고 당시 조조는 즉사한다. 나중에 이때 때려치운 조종사가 당시 안전장비가 개판이라는 증언을 하는 바람에, 캐논 그룹과 메나헴 골란은 곤욕을 치러야 했다. 그때 헬기조종사의 사망을 영화수입사의 농간인지 감독인 어론 노리스가 촬영중 헬기사고로 사망했다고 홍보를 했다.] 시리즈와《[[람보 2]]》를 베낀 짝퉁이라는 오명에 시달리고 있으나 사실은 1년 먼저 제작된《대특명(Missing In Action)》[* 이건 원제목이고, 국내 개봉제목은 《부르다크》. 주인공 이름이 제임스 브래독인데, 괴이하게도 국내 개봉당시 제임스 부르다크라고 자막을 붙였다. 원래 1편과 2편을 동시에 찍어서 상영하려고 했는데, [[어른의 사정]]으로 베트남에서 귀환한 후 어떠한 일로 다시 한 번 돌아가는 2편이 1편으로 먼저 개봉되었고 이후 1편이 될 예정이었던 2편은 <> 이라는 제목으로 개봉된다. (한국 개봉제목은 《부르다크》인데 [[SBS]] [[영화특급]]에선 원제목으로 방영했다.) 3편은 백야의 탈출이란 제목으로 한국개봉했는데 주인공 이름만 같을뿐 설정이 전혀 다른 이야기다.] 시리즈. 이때만 해도 그럭저럭 인기가 있었다. 90년대에는 자신이 기획 제작한 TV시리즈《[[텍사스 레인저]]》를 히트시켜 8년간 방영하는 장수 시리즈로 만드는 성공을 거두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는 1시즌도 안 마치고 끝났다.] 또한 의외로 출연하는 영화장르가 넓어져 80년대의 진지한 액션 영화에서《사이드 킥》과 같은 성장영화, 그리고 심지어는 숲의 정령이 돼서 숲을 지키는 역으로 환경영화에 출연하기도 했다. 《텍사스 레인저》이후로는 도장과 사회사업에 전념하면서 액션배우로서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갔지만, "척 노리스의 진실"이라는 유머 시리즈가 인기를 끌면서 순식간에 대세로 탄생. '''[[돌려차기]]로 모든 것을 쓰러뜨리는 지구 최강, 아니, 우주 최강의 [[인간흉기]]로 인식되고 있다.''' 쉽게 말해 초딩들의 전성기의 [[싱하형]]에 대한 인식 정도다. 여담이지만, 위에서 서술한 이소룡과 함께 출연한 데뷔작이 척 노리스가 유일하게 악당으로 등장한 작품이자 유일하게 타인에게 패배한 작품으로 알려져있으나 74년 홍콩영화《황면노호》에서도 악역으로 나와 주연인 왕도에게 패한 사례가 있다.《맹룡과강》은 무술인 자격으로 특별 출연한 것이므로 실질적인 배우로의 영화 데뷔는《황면노호》가 되는 셈이지만, 사실은 그보다 한 해 전《The Student Teachers》라는 영화에서 단역으로 출연한 바 있다. 사족이지만《황면노호》의 영어 제목은《Karate Cop》, 혹은《Slaughter in San Francisco》. 또한 [[벨로키랍토르]]도 '''잠깐 동안은''' 척 노리스를 상대할 수 있다고 한다. 연쇄 살인마가 나온 영화 Hero and the Terror[* 여자를 주로 골라 목을 부러뜨려 죽이는 미치광이 살인마랑 맞붙는데 후반부 대형 극장에서 마지막 결투를 벌이고 다리에 부상을 입긴 하지만 결국 옥상에서 떨어뜨려 죽인다. 여담으로 살인마 사이먼 문역은 영화 슈퍼맨2의 죠드장군의 부하인 얼간이 논을 연기한 배우다. 한국에서는 히어로라는 제목으로 세경문화영상에서 비디오로 냈고 1994년 8월 27일 [[토요명화]]에서 <강력계의 영웅>이란 제목으로 더빙 방영했다.] 에서도, 이런 놈 정도는 별거 아니라는 듯 발차기로 실컷 데리고 놀다가 날아차기로 날려서 추락사시켰고,《[[텍사스 레인저]]》가 한창 방영될 때 나온 공포액션영화《[[블랙 라이온]]》[*《텍사스 레인저》의 여주가 역시 상대역]에서는 세계를 멸망시킬 고대의 악마 프로사타노스를 뒤돌려차기로 분쇄[* 정확하게는 쓰러뜨린 뒤에 봉인했다.]하는 위업을 펼쳤다. 사실 스티븐 시걸과 더불어 대부분의 영화에서 무적기믹을 보여줬으며 그가 유일하게 고전한 영화는 싸이렌스(Code of Silence)와 Hero and the Terror뿐이다. 동생인 아론 노리스는 1952년생으로 [[블랙 라이온]]이라든지 위에 나온 스트롱맨을 비롯하여 척 노리스 주연 영화들을 많이 감독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